원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원주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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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원주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원주시사회적경제기본조례(2019.4.12.시행)’에 근거하여 원주시가 설립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 1960~70년대

  • 1980년대

  • 2000년대

‘거룩한 땅’의 시대1960~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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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의 협동조합은 1965년 천주교 원주교구가 설정된 이듬해인 1966년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크게 영향 받은 지학순 주교가 천주교 원주교구에 부임하면서,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자”며 장일순 선생과 손잡고 다양한 신용협동조합을 조직해나간 것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72년에는 남한강 지역의 3개도 13개 시·군, 87개 읍·면에 밀어닥친 수해 복구 사업을 독일의 천주교 구호단체인 ‘미세레올’과 ‘까리따스’의 지원으로 농민, 노동자, 어민, 영세 시민들이 협동적 공동체 건설과 직접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광범위한 자활운동을 전개합니다.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공업중심, 도시중심의 정책이 정점을 치달을 때 농촌이 피폐의 길을 걷자 장일순 선생과 지역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새로운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엑서더스와 전국화’의 시대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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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 정권은 이전보다 더 냉혹하게 원주를 탄압했습니다.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의 급변은 원주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던 탄광촌과 농촌을 쇠퇴시켰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원주캠프의 주요 분들은 그 활동의 근거지를 서울로 옮겨 전국을 대상으로 새로운 생명협동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지금의 한 살림이 이렇게 태동했습니다.

‘다시 지역’의 시대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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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캠프의 주요 리더들이 그 활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는 동안 원주에서의 협동조합도 많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에 일어난 외환위기는 원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업의 잇따른 도산으로 지역 경제와 시민 생활이 위기에 처했고, 시민 생활의 안정 없이 협동조합의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원주의 협동조합들 안에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2003년 6월 5일 지역을 기반으로 협동조합 간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의 토대 형성과 지역 주민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는 협동조직인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라는 협의체와 다양한 협동조직을 태동시키는 데로 이어졌습니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으로 원주지역에 사회적기업을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겪으며 보다 강한 결속력을 가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로 전환했습니다.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2013년 ‘사회적협동조합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설립하고 협업체계 구축을 통한 지역사회의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과 공동체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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